알라딘 중고서점에 갈때마다 여러권 꽂혀있었던 책이지만 제목부터 매력적?이지는 않아서 선뜻 집어들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지인이 '책 읽어드립니다' 프로그램에서 나왔다면서 추천하길래 읽게 되었다. 요즘 소설을 잘 안읽어서 한번 읽어볼때도 된것 같기도 하고~ ^^
아무래도 노벨상 수상작가의 책이라 부담?을 느끼며 읽기 시작했다. 아 난 재밌가 없으면 어떡하지 ㅋㅋ 재미 없어도 재밌었다고 해야지...하면서. 하지만 내가 노벨상 수상작가의 '남아있는 나날' 보면서 오열했던것을 기억하면서...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결론은 ㅠㅠ 이 책도 오열까지는 아니지만 흑흑...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결국 울었다.
책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간이 오랑시 194x년인데, 오랑이 실제 있는 도시인줄 몰랐다. 그냥 가상의 지역인줄 알았는데 책 뒤에 나오는 작가의 소개를 보니 작가가 페스트를 준비한 시점이 1941년이고 그때 오랑의 사랍학교 선생님이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알수 있는 살고 있는 곳을 배경으로 글을 쓰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이 글을 썼기에 이렇게 디테일한건가 싶기도 하다. 책 읽는 내내 각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설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책의 표지대로 책은 오랑시의 의사 리외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페스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나오는 중심 인물들이 다 남자이고. 자녀가 없는 것을 보면서 약간?은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각 인물들을 눈에 보이듯이 표현한 부분은 읽으면서도 감탄하게 되었다. 서술자는 소설의 사실성을 위해 객관적인 참고자료를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타루의 수첩이다. 아마 이 소설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이 타루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그는 빨리 걷는다. 걷는 속도를 바꾸지 않고 인도로 내려서지만, 세 번 중 두번 정도 가볍게 뛰어 반대편 인도로 올라선다. 차를 몰 때는 방심하는 편이라 모퉁이를 돈 뒤에도 흔히 방향등을 안 끄고 그냥 간다. 항상 모자를 안 쓴 맨머리, 통달한 표정' 타루의 수첩에 나온 리외의 걸음걸이 묘사가 나는 참 좋았다. 누군가의 걸음걸이를 이렇게나 상세하게 본적이 있나 싶다. 나도 타루의 수첩을 따라해볼까 싶기도 했다. 타루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고 내 가족에 대한 것 말이다. 정작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걷는지... 동생은...남편은... 잘 모를때가 많다... 그리고 기억을 못하는것이 아쉽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8년이 지나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남은 가족들이라도 기억잘하고 싶다. ㅠㅠ
'사실 재앙이란 항상 있는 일이지만, 막상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운 법이다.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나 전쟁이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 만일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재앙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잴수 없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비현실적인 것, 즉 곧 사라지고 말 악몽으로 여긴다. 하지만 재앙은 사라지지 않으며 반복되는 악몽속에 사라지는 것은 바로 사람들인데, 그 선두에 인간주의자들이 서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앙에 주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이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코로나 확진 관련된 뉴스를 보면 결국 금욕과 절제의 삶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간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자신은 비켜갈것이라는 희망? 자신감... 15년만에 육아휴직으로 쉬게되면서 소소하게 세웠던 계획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집에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몇달째 이어가고 있는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 지켜야할 사람들이 없어서인가? 자신만 아니면 되니까? ㅠㅠ
'1억명의 사망자란 무엇인가? 전쟁을 치르고 나서 사람들은 사망자 한 명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잘 알수가 없다. 게다가 죽은 사람이란 사람들이 그가 죽는 것을 목격하는 경우에만 무게를 갖는 법이다. 따라서 역사에 걸쳐서 산재되어 있는 1억 구의 시신들은 그저 상상 속에 피어나는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자 또 축복아닌가 한다. 수 많은 죽음들을 다 의미있게 받아들인다면 과연 내 삶을 살아갈수가 있을 것인가. 난 옆에서 경험한 엄마의 죽음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말이다.
'그랑의 말을 믿자면, 그는 그 자신 단호하게 주장하지 못했던 '권리'라는 단어나, 자기의 몫을 요구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가 맡고 있던 직책과 어울리지 않는 과감한 성격을 갖게될지도 모르는 '약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을 특히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다른 한편 그는 개인적인 자존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호의', '간청하다', '감사'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시민 그랑은 이렇게 해서 나이가 제법 들어서까지 뚜렷하지 않은 직책을 계속 수행했던 것이다.' 그랑과 관련해서 단어나 문장에 대한 얘기가 나올때면 내가 불어를 잘 알아서 원서를 읽었더라면 더 그 느낌이 와닿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계속 인문학이 각광받으면서 추천하는 많은 고전들이 외국 작가들이 쓴 책인데 그 의미를 아무리 최고의 번역가가 하더라도 완벽하게 표현하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물론 이런말을 하기에는 너무 책을 안 읽지 않았나... 그냥 생각이 그렇다는 얘기다.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가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의 방식을 표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특별히 많이 쓰는 단어가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단어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에 따라... 또 비속어인지 표준어인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것이 사실이다. 과연 내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인가...
페스트가 심해져 결국 관문 폐쇄의 조치가 취해졌고 이 상황에 대한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시행령이 발효된 날 이른 시각부터 도청은 많은 진정인에 의해 시달렸다. 이들은 전화를 걸거나 혹은 공무원들을 찾아와서 하나같이 이해는 가지만 동시에 하나같이 검토가 불가능한 상황들을 털어놓았다. 진실을 말하자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어서 '양해', '특전', '예외'라는 단어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날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194X이다보니 고립된 오랑시 사람들은 전보만이 바깥세계와의 유일한 통신 방법이었다. 이에 대한 작가의 표현도 참 마음에 와닿았다. '지성. 마음. 몸으로 연결되었던 사람들이 열 단어 정도의 대문자로 된 전문에서 오랜 공감의 표시들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전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구들은 빠르게 동이 나 오랫동안 공유해 온 삶이나 혹은 고통스러운 열정은 다음과 같은 규칙적인 서식 문구로 바뀌어 버렸다. '잘 지낸다', '너를 생각한다', '애정'.' 열단어로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같이 애정표현이 자유롭고 가벼운? 시대에서는 왠만한 사랑 표현에 마음이 움직이기 힘들것이지만... 고립된 오랑시로 부터 전해지는 열단어의 문장은 무겁게 그리고 먹먹하게 느껴질것 같다. ㅠㅠ
'그때부터 우리는 결국 수감자가 되어 과거밖에 없는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몇몇은 미래를 기대하며 살려는 유혹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런 유혹을 재빨리 포기했다. 적어도 아직은 그럴 수 있는 자들은, 상상이란 그것을 신뢰하는 자에게 결국 상처를 주고 만다는 것을 겪으면서 말이다.' 희망에 대한 슬픈 현실을 지적했다. 신뢰하는자에게 결국 상처를 주고 만다는 것을 겪는다라... 무신론자로 보이는 작가로서는 이렇게 밖에 적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난 크리스쳔의 길을 택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사실 책에 나온 신부의 설교들이 솔직히 와닿지 않았다. 작가가 바라본 그리고 상상한 신부의 모습은 좀 나와는 달랐던것 같다. 신부가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엔도 슈사쿠의 '침묵' 이 생각났다. 대학때 읽었던 책. 그리고 나로 하여금 믿음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책...
'매일 저녁 사람들의 팔이 리외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고, 그들은 또한 소용없는 말들, 약속들, 눈물들을 쏟아 냈으며, 매일 저녁 구급차의 경적은 모든 고통과도 같은 쓸데없는 경기를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항상 비슷한 저녁들을 겪은 끝에 리외는 무한정 다시 시작되는 이와 비슷한 광경이 길게 이러지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바랄 수가 없었다.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처럼 단조로웠다. 어쩌면 단 한가지가 변했는데, 그것은 리외 자신이었다. ... 동정심이 소용없어지면 사람은 동정심에 대해 피곤을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서서히 저절로 닫혀 가는 마음의 감각을 느끼며 의사는 짓누르는 듯한 이 며칠 동안에 유일한 위안거리를 얻게 되었다. 그는 자기 일이 그것으로 인해 수월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투병시절 응급실이나 암병동 센터에서 단조롭고 사무적인 표정의 간호사와 의사를 보면서 '차갑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직업병이구나. 그들도 수많은 환자와 죽음을 겪으면서 마음의 감각이 닫혀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였던 친구도 병원을 떠나 임상 연구쪽으로 간 이유가 죽음앞에서 무덤덤해지는 자신을 견딜수가 없어서였다고 했다. 누구나 어떤 슬픔이 지속되면 익숙해지고 무뎌지는것 같다. 그래야 살아갈수 있으니까...
'바로 이 인정이 그로 하여금 매일 스무 시간씩,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참고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딱 그 정도의 인정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투기가 극성을 부려 일반 시장에 부족하던 일차적 필수품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부유한 가정들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던 반면, 빈곤한 가정들은 그로 인해 무척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페스트는 그 작용상 효과적으로 발휘해 온 무차별성으로 인해 우리 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조장해야 했을 텐데, 이와 반대로 이기심들의 정상적인 작용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불공정이라는 감정을 더 첨예하게 만들었다.'
'이런 가족들도 분명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아껴 창고에 간직해 두었고, 진정으로 그럴 권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것을 꺼내 쓰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고뇌와 기쁨의 중간 지점에서의 이런 기다림, 이런 침묵에 싸인 전야는 전체적인 환희의 한복판에서 그들에게 더 잔인해 보였다.' 페스트의 힘을 못쓰는 양상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예외적인 확진자 가족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언제든 이런 예외적 케이스는 있을것이다. 신약이 성공해도 그 신약에 예외적인 사람도 있을것이고. 내가 아니라고 해서 아파하는 이웃이 있음을 알고 어떤 상황에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떠나게 되죠. 산다는 게 그래요.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어요.' 책에 나온 사람들 중 콩 옮기는 노인이 진정한 승자인것 같다. ㅎㅎ 페스트 이전이나 중간이나 이후나 한결같은 삶을 살아가니 말이다. 그리고 재야의 고수처럼 중간중간 한마디 한마디 하는것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위의 마지막 말도 ㅠㅠ
오랜만에 읽은 소설인 페스트는 나에게 왜 소설을 읽어야하는지 다시 일깨워준것 같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그리고 설사 경험했더라도 알수 없는 다양한 상황과 모습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어 나의 생각의 폭을 한폭 더 넓혀준 것 같다. 코로나19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거의 격리 수준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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