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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

[독서 노트] 여행의 이유

by litaro 2020. 5. 3.

여행의 이유

난 책은 먼저 빌려보고 마음에 들면 사는 스타일이다. 경제적인 이유와 공간적인 이유로... 이 책은 세번을 빌려보고 사기로 한 책이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소설은 너무 어두워서 ^^;;; 안 맞고 에세이로 믿고 보는 작가다. '읽다, 보다, 말하다'도 읽으면서 참 마음에 와닿고 아 이렇게 생각할수 있구나.. 책을 이렇게 보면 재밌겠구나... 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할수 있게 했다. 흠... 저 책들도 한번 독서 노트 써야겠다. ㅋㅋ

여행 관련 에세이는 너무나 많기에... 뭐 비슷하려니 하고 사실 빌려볼 생각도 안하다가.. 여행이라면 한 전문가?하는 회사 동료가 읽어보고 좋다고 추천하기에 빌려 보게 되었다. 이미 알쓸신잡을 통해서 여행을 많이한 사람이고 독특하게 하는? (여행지에 가면 무덤에 꼭 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 내용일거라 생각하고 책을 읽었는데 예상외의 내용으로 역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본 책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도 잘쓰는것 같다. 알쓸신잡에 많은 유명인들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영하 작가가 가장 말을 조리있고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잘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해할수 있는 쉬운 언어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것은 어려운 일일텐데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했다. 

추방과 멀미

'2005년 12월 어느 날, 나는 상하이 푸둥공항 티켓카운터에서 서울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사고 있었다. ... 추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호...책의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얘기로 확 나를 사로잡았다. 추방이라니... 무슨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서야 일반인이 추방당하기는 쉽지 않을텐데... ㅋㅋ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완전 공감한다. 우리도 여행이 끝나고 얘기하게 되는 많은 것들은 얘기치 않게 만났던 사건들아닌가... 나 또한 태국 여행때 호텔을 아무생각없이 만든 구글 계정으로 예약하는 바람에 체크인하느라 애먹었던 일을 5년이 지난 지금도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어 귀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되는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 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이다.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아... 이 문장을 읽을 때 난 머리를 한대 맞은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6년전의 괌 여행이 바로 이러한 이유였음을 이 문장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기나긴 퇴근길... 집에 돌아오기 싫었던 그 시절... 그 공간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집으로 돌아왔을때 감사하게도... 그 공간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 잡힐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것이다.' 나도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 1인이다.

오직 현재

'오랜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펼쳐보면 놀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거의 없다.' ㅎㅎㅎ 난 이 문장을 읽으면서 빵 터졌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알쓸신잡에서 다양한 근거를 들면서 이야기를 했던 작가도 모든것을 기억하는건 아니구나. 이 문장이 나에게 퍽 위로가 되었다.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뇌는 한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어서 찾을 수 없게 될뿐.' 난 요즘 너무나 많은 경험들을 너무 깊이 처박아두나보다.. 왜이리 기억이 나지 않는지... 그래서 사진을 강박적?으로 찍기 시작한것 같다. 사진을 보면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되나 싶어서 말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오 의외였다. 방송을 통해 여행을 많이 한 사실을 들으면서 역시 작가라서 글감을 얻거나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많이하나보다 했는데 말이다. 역시 여행은 그 누구에게나 여행이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것이구나...

'무슨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그렇지. 여행하는 순간에는 과거나 미래 생각보다는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어떻게 오게된 여행인데...그 순간 순간을 놓치면 안되기에 더 집중하고 더 감동하고 더 표현하려고 하는것 같다. 그리고 작가도 얘기하듯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그것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쁘게 나온 사진과 함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멋진곳에가서 놀라운 것을 경험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인칭의 경험이다. 그런 아쉬움때문에 셀카를 찍어보지만, 셀카는 기본적으로 일인칭의 거울상으로 나타난다. 내가 렌즈를 보면 렌즈가 나를 찍는것, 완벽한 삼인칭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지. 여행은 일인칭의 경험이지. 나도 항상 여행하면서 아쉬웠던것은 내가 여행하는 모습과 그 멋진 배경을 한 그림으로 완벽하게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각종 여행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에게 부러운 것이 여행을 돈 받고 한다는것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감동해서 나온 모든 표정이나 말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겨진다는 것이다. 

알쓸신잡이 출연자 당사자였던 작가에게도 정말 새롭고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행하는 나'를 삼인칭의 시점에서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 같이 여행지에 갔지만 그들의 여행을 이야기로 듣게되고 나중에 편집이 되어서야 화면을 통해 그들의 여행을 보게 되는것이다. 작가는 이를 카프카의 소설 '성'과 같다고 얘기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에는 성을 찾아가는 건축기사 K가 등장한다. 그는 거듭하여 묻는다. 성은 어디에 있냐고, 사람들은 여기 또는 저기를 가리키는데, 때로 어떤 사람은 그가 이미 성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함께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미 그 프로그램안에 들어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 프로그램안 어디쯤 있는지를 모른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여행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거나 여행서를 읽을까? 이에 대해 작가는 깔끔하게 정리했다. '여행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 왜~~ 난 안 읽었는데 ...ㅠㅠ 다행히 나같은 사람을 위해 작가도 내용을 친절하게 요약해주었다.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무언가이다. 그 무언가를 읽어버렸을때의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만약 사회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한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즉, 그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라.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 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림자가 있어야 할것이다. 방랑자가 되기는 어려울 테니... 나 또한 가정이 있어 쉽게 그림자를 팔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더라도 다시 또 작가의 표현처럼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여행을 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대가 없는 도움... 작가는 환대라고 표현했는데 누구나 한번쯤은 다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또 그 환대를 베풀었을 수도 있다. 작가도 수많은 여행 속에서 많은 환대를 받았고 그중 20년전 발리에서 경험한 환대의 추억을 공유해주었다. '이런 환대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언젠가 읽은 여행기에서 나는 답을 발견했다. ....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 여행지에서의 환대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게되는 예상치 못한 은혜의 경험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선순환이 되도록 나 또한 낯선 이방인들에게 환대를 베풀어야겠다. 

노바디의 여행

'현지인들이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침 나절. 아무 할일도 없이 베낭을 메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캬~ 그렇지 이 것이 여행이지. 아무 할일이 없이 시간을 그냥 흘러보며...오감을 완전히 열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 상상만해도 행복한 순간이다. 아... 이 글을 읽으면서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작가의 얘기처럼 여행을 떠나면 그곳에서 나는 단순히 나의 피부색, 성별, 나이로 보여질 뿐이다. 노바디이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나 옷차림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관심을 받지도 않을 것이기에 자유로운 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해외에 나가면 깜짝 놀랄만한 옷차림을 한 한국인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안 입을 만한 과감?한 패션...ㅋㅋ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행지에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아주 편한 옷을 입거나 아니면 차마 한국에서는 입을 수 없는 과한 옷이나 장신구를 가져가서 입고 한다. 그게 또 여행의 묘미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도 선이 있어야할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한국 여행객들의 뉴스를 볼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 아마 그들도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 잠시 자신의 무거운 일상의 짐을 벗고자 여행을 하며 자유를 누리는것은 좋은데 그 나라 문화에 맞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하지 않을까...

여행으로 돌아가다

'우리는 뭔가를 하거나,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뎌야한다.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떠나면 그만이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로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생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막연하게 산만하게 생각한 여행의 이유를 명확히 정리해주는 문장이다. 그리고 설득력도 엄청나다. ㅎㅎ 나에게 확실한 여행의 이유가 생겼다. 일생을 여행할 힘을 얻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자~!!

 

작가의 말에서 와닿은 문구...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말...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성경에서도 이 곳은 잠시 머물다가는 곳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긴 여행을 하는 것이고. 여행중에 동행을 만나고 헤어지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데... 작가의 표현처럼 후회없도록 아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환대하자.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