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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

[독서 노트] 다시, 책으로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by litaro 2020. 4. 22.

다시, 책으로

제목이 책을 의지적?으로라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르게 되어 작년에 e-book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어가 낯선것들이 있어서인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읽다가 중간에 멈추었다.  그러다가 휴직했으니 무슨 책을 좀 읽을까 하다... 딱 생각났다. 이 책은 다시 읽어야한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종이책으로 읽기 시작했고 그 당시 들어오지 않던 내용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e-book과 종이책을 병행하면서 읽으면서 느낀것이, e-book을 읽을 때 뭔가 꼭 집어서 얘기할 수 없는데 내용이 확 들어오지 않거나 앞의 내용이 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디지털 기기로 읽는 것과 종이책으로 읽는 것의 차이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그 몇몇의 결과를 알게 되어 나 혼자만의 경험적 느낌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다시 보니 옮김이의 말이 참 와닿았다. '책은 흐린 밤하늘에 흩어져 출몰하는 별빛이었지요' 나 또한 그래도 어릴때부터 배운게 있다고.. 뭔가 마음이 혼란스럽고 시간이 그냥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을때마다 책을 들게 되는것 같다.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읽는 능력은 말하는 능력과 같이 타고난것이 아니다.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읽기에 관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첫번째 사실은 문해력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어린 독자에게는 읽기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유전적 프로그램이 없다는 뜻이지요.'  아하.. 그렇지... 그래서 읽는 것을 가르치는게 어려웠구나. 구어에는 전담 유전자가 있는 반면 읽기에는 물론 관여하는 유전자가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단다. 아이가 말은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쉽게 배우는데 글과 읽기는 붙잡고 가르쳐야했던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읽기 능력은,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서 읽기 회로를 형성시키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되고 이것은 결국 생각하는 능력의 차이가 된다고 한다,

저자는 한단어를 읽을 때 마다 우리의 읽는 뇌에서 일어나는 다중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작업이 마치 3중 서커스의 모습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즉, 단어 하나를 읽을 때 마다 수천, 수만개의 뉴런 작업군이 동시 다발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할것인가. 결국 어렸을 때 부터 많이 읽어서 발달시켜온 신경회로의 성능에 따라 읽는 능력은 달라질 것이다.

깊이 읽기

공감: 타인의 관점으로 '옮겨가기'

책을 읽으면 타인의 관점을 취하게 되어 우리가 지닌 공감의 감각이 방금 읽은 것과 연결되고 이로써 내가 경험하는 좁은 세계에서 보다 넓은 세계에 관한 내면의 지식을 구축할수 있다. CS 루이스의 삶을 극화한 연극 <섀도우 랜드>의 대사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읽습니다.' 사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디지털 시대에서의 책 읽기에 대해 나만 궁금해하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저자는 우려한다. '책들, 그리고 그 속에 거주하는 '친구들'의 삶과 감정들로 창조되는 수 많은 세계에 우리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인지적 인내심을 서서히 잃어간다면 결국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제인 오스틴을 읽을 때 당신의 뇌' 논문의 연구는 몰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동일한 책을 스탠퍼드 문학 전공 대학원생들에게 재미로 읽게 하느냐 집중해서 읽게 하느냐에 따라 뇌가 활성되는 영역이 달라진다고 한다. 깊이 읽기에서 나오는 몰입이 영화와 영상에서 가능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글로 명료하게 표현된 타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때 만큼의 몰입에는 이르지 못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타인의 관점을 취해보는 과정과 소설 내용 자체가 공감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도덕 실험실'의 역할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잠시나마 타인이 되어보는것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를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시뮬레이션을 거치면 우리의 읽기 회로망은 정교해집니다.' 저자도 얘기했듯이 과거에 비해 요즘 사람들의 공감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고 결국 이로 인해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물론 책만은 아닐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연인끼리도 카페에서 각자의 휴대폰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의 환경에 더 익숙해진 환경에서 미세하고 섬세한 감정을 어떻게 배우고 알수 있을까... 나의 선입견, 편견을 넓히려면 이런 시뮬레이션이 중요하구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우리 각자가 경험과 정보와 우리가 읽은 책들의 조합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각자의 삶이 백과사전이며 도서관이다. (이탈로 칼비노)"

깊이 읽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읽으면서 누적해온 정보와 경험이이 있어야 한다. 요즘 내가 지식을 얻는 방법을 생각하면... 주로 외부 지식 서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구글에서 검색하거나, 네이버에서 검색하거나... 만약 오프라인 상태가 되면 난 무엇을 할수 있을지...^^;;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해 지적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채내 플랫폼에 고유한 배경지식을 저장한 전문가 독자 집단으로부터 서로 유사한 외부 지식 서버에 의존하는 전문가 독자 집단으로 변해가는 듯 합니다'

인지심리학자 키스 스타노비치의 연구 결과, 유년시절 어휘가 풍부했던 아이가 나중에도 어휘가 풍부해지고 그 반대로 어휘가 빈곤했던 아이는 커서도 어휘가 빈곤해진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결과다. 어휘가 풍부하면 그 만큼 이해할 문장들이 많아질 것이고 더 폭넓게 책을 접하게 되니 선순환으로 어휘가 풍요로와 질 수 밖에... 아... 그래서 내가 어휘가 딸리나 보다 ㅠㅠ 이런... 이제라도...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은 읽기에 적용할 자원이 많아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용할 자원이 적어지면서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지고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쉽다는 말이지요.'

지금 우리의 깊이 읽기는?

'인생의 과업으로서 글의 길과, 글을 알고 사랑하는 길은 사물의 정수로 가는 길인 동시에 앎의 정수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앎인 사랑, 사랑인 앎에 필요한 것은 고요한 눈이다.' 저자는 계속 주장한다 우리에게 '고요한 눈'이 필요하다고.. 깊이 읽기 위해서는 결국 시간이 필요하고 양질의 주의가 필요한데... 기술덕분?에 우리는 지속적인 온라인 상태에서 디지털기기를 분신처럼 함께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최근 <타임>이 20대들의 미디어 사용 습관을 조사한 결과 정보를 얻는 매체를 전화하는 빈도가 시간당 27회라고 합니다.' 나 또한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속에서 한가지를 깊이 있게 읽고 생각하기 보다는 얕고 넓게 스캔하여 정보를 얻는 경향이 강하다. '불행히도 이런식의 읽기는 대개 연속적이거나 지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는 되지 못합니다.' ㅠㅠ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과 트위터로 인해 엄청난 단어 파도에 휩쓸리고 140자만으로 생각을 표현하는것에 익숙해져 고전들을 읽는것을 힘들어한다. 저자는 요즘의 베스트셀러 소설의 문장 길이가 20세기 초중반 작품의 문장 평균 길이와 비교하면 절반에 못미치는것을 확인했다. 물론 문장 길이는 작가의 문체 스타일 마다 다르긴하더라도... 깊이 읽기가 어려워진 만큼 우리가 쓰는 글 또한 쉽고 간결해졌다. 

'핵심적인 쟁점은 그들의 지능도 아니고, 거의 확실시되긴 하지만, 학생들이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과 멀어지는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어려운 비판적, 분석적 사고를 견디는 인내심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 세계들 중에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 첫글자를 석판에 휘갈리고 처음으로 글을 읽으면서 인공적이고 가장 복잡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을 완전히 알고 완벽하게 실행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없다면, 쓰기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인간성도 없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 <책의 마법>)

디지털기기로 읽는것이 뭐가 다른가?

디지털 기기로 읽을 때 우리는 주로 '훑어보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디지털로 읽을 때는 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텍스트상의 '단어 스팟'(스크린의 왼쪽)을 재빨리 훑어 보고 맨끝 결론으로 갔다가 다시 세부 내용을 보는 식으로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 노르웨이 학자인 망겐의 연구에 따르면 스크린으로 읽으면 시간순으로 기억을 배열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아... 내가 e-book으로 읽을 때 왜 자꾸 헛갈렸는지 알것 같다. e-book은 목차로 Jump해서 가거나 progress bar를 당겨서 이동하다보니 그런것이다.

앤드루 파이퍼는 '단어를 스크린으로 읽을 때는 놓치기 쉽지만 인쇄된 형태로 읽을 때는 활성화 되는것에 촉각이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고 암시합니다' 흠... 모든 감각을 활용해서 책을 읽는것과 디지털 기기로 읽는것은 다를 수 있을것 같다. 학창시절 시험준비할때 한참 외운것은 책 페이지나 위치도 함께 외워졌던 기억이 나는것을 보면 물리적인 책을 느끼느냐 안느끼느냐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로 양육된 아이들

'인간은 끼니나 짝을 구할때와 마찬가지로 열정을 품고 새로운 경험을 얻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멀티테스킹을 하다보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중독의 구멍으로 빠져든다. 이것은 뇌의 새것충추가 반짝이는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고 보상받으면서 일어나는 일이다....우리는 장기적 보상을 좇고 단기적 보상은 포기하는 방향으로 우리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디지털 기기는 우리가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디지털 기기와 그 기기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겠지... 

요즘 아이들은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심심한 상태에 있어야 각종 말도안되는? 상상을 하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텐데 말이다. 전문가들도 말한다. '스크린위에서 노는 것에 중독되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무료함이라 부르는 둔주 상태를 헤쳐나가는 법을 모를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바로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전주곡일 경우가 많다. (임상심리학자 캐서린 스타이너-어데어)

또한 디지털이 제공하는 정보의 홍수로 아이들이 소화할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 지식을 연결시켜 판단하고 결국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 기회를 놓치게 된단다. 너무 많은 외부 정보로 오히려 내면의 배경지식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실리콘 밸리 기술전문가인 트리스탄 해리스의 말을 들어보자. '구글, 애플, 페이스북등 세 개 회사에서 일하는 극소수 설계자들의 결정이 전 세계 수백만명의 주의 집중 방식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적은 없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어떻게 아이들의 읽기를 가르칠까?

저자는 제안한다.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 디지털 세상은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에 무조건 이전의 방식만을 고수하는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를 얘기했다. 소크라테스는 책이라는 그당시 새로운 매체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를 했다고 한다. 글자로 남기려고 하다보면 머리에 담으려는 노력을 안하게 될것이라고 말이다. ㅋㅋ 우리의 디지털 기기에 대한 우려도 동일할 수 있다. 결국 문해기반회로와 디지털기반 회로를 모두 이해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한다. 

저자는 디지털 지혜를 가르치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은 보다 느린 인쇄물로 생각하고 읽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고속으로 작동하는 스크린에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기기는 코딩과 프로그래밍을 위한 매체로 소개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크래치도 이를 위해 설계된 것이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코딩도 학습자가 사고를 조작하고 생각을 표현하도록 돕는다.... 어린아이들이 코딩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만든 소프트웨어로 상호작용하는 대신 스스로 컴퓨터로 뭔가를 만들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순서에 따라 사고하고 원인과 효과를 탐구하고 설계와 문제해결기술을 개발하는 법을 배운다. 동시에... 아이들은 코딩을 배울 뿐 아니라 배우는법을 코딩할 것이다.' 오호~ 안그래도 스크래치로 아이에게 순서에 따라 사고하는것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군... 도전~!

독자들이여 집으로 오세요

'읽기 위해서는 모종의 침묵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잉 연결된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점점 멀어져가는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관조가 아니라 이상한 종류의 주의 분산. 그러니까 무엇이든 알고 있는 듯한 위장된 산만함이다. 그런 풍경속에서 지식은 환영의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다. 속도가 우리를 계몽으로 이끌고, 깊이 생각하는 것보다 바로 반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속삭이는 심히 유혹적인 환영 말이다... 읽기는 관조의 행동이다... 그것은 주의를 분산시키는 지형속에서는 저항의 행동이다... 그것은 우리를 시간과 더불어 생각하도록 되돌려 놓는다 (데이비드 올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타이탄들은 주기적으로 시간을 빼서 연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다고 들었다. 아마도 위에서 얘기한 침묵이 필요하기에 의도적으로라도 자신들을 디지털 세상에서 단절시키기 위함 일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그런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실 조금만 의지를 가지고 폰을 내려놓고... 드라마를 포기하면... 되지 않을까...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다. ㅠㅠ 올해부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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