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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

[독서 노트]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by litaro 2021. 5. 5.

복직하고 업무 관련 책만 읽다보니 딱히 독서노트를 쓸일이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항상 책과 함께하기로 유명한 (회사 엘레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에도 책을 읽으시는... !!) 회사동료분이 이 책을 꼭 읽어보라며 빌려주셨다. 속으로 난... '아... 고등학교때 제일 싫어한 과목이 지구과학인데... 읽고 재미없으면 내 수준이 낮아보이나...' 하며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역시 전문 독서가 답게 내 수준을 눈치챈? 그분은 나에게 딱 맞는 책을 추천하셨다. (앞으로는 이분에게 추천목록을 받아야겠다 ^^) 와우. 이과인 천문학자도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 나보다 어린 천문학자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과 존경심?과... 그리고 감동까지... 읽고나니 퇴근후 아이와 밖에 나갈때면 하늘을 올려보게 되었다. 물론 책 제목은 별을 보지 않는다... 이지만, 그리고 책을 읽어도 하늘에 반짝이는 것이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는 구별할 수는 없지만...

에필로그부터 확~!! 나를 사로잡았다 ^^

저자는 네이처가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선정한 과학자중 하나인데. 그렇다면 그 분야에서는 인정받은 분인데도 천문학을 하게된 계기에 대해서 진솔?하게 얘기하고 있다.

엉뚱한 시작이었다. 수업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되돌아 칠판에 바짝 달라붙더니 몸을 잔뜩 웅크려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는 칠판에 무언가를 표시했다. ...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애쓰며 점 두개를 칠판에 찍고는 돌아서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무미 건조한 중년 아저씨의 눈에서 반짝, 소년이 지나갔다. 술이나 산해진미도 아니고, 복권 당첨도 아닌데. 하다못해 아름다운 '연주씨'를 만난 것도 아니고 그냥 연주시차.

감사하게도 우리 모두는 가끔? 소년,소녀의 순간을 경험한다.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는 순간. 보통 자기 자신은 그 순간이 온 것을 알아도, 다른 사람이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을 캐치하기 어려운데 저자는 '소년'을 알아챈것이다. 괜히 과학자가 된것이 아니다. 미세한것 까지 발견하는 관찰력이 정말 뛰어난것 같다. 게다가 표현력이 ㅋㅋㅋ '연주씨' 라니... 

저 글을 읽다 갑자기 나도 인생?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안타깝게도 학교 선생님은 아니고, 단과 학원 선생님이셨는데. 고등학교 2학년 한문이 하기 싫어 ^^;; 이과로 가면서 결국 큰 맘먹고 대치동 수학 단과 학원 수강증을 끊었다. 영국 유학파?셨던 그분이 가르치시는 함수는 예술이었다. ㅋㅋㅋ 수학이 너무나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며 나 또한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것은 별개라는 것~ ㅋㅋ 그래도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지금 밥벌이를 하고 있기에 감사드린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잊고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공대를 택한것은 단순히 이과인데 과학자 스타일은 아니고 의사가 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것은 아니라서였다. 하지만 대학 도서관에서 읽게된 '빛'에 대한 책은 나를 사로잡았고 그 때부터 광학, 광소자, 광통신 과목을 선택하게 했다. 연구실을 택할때도 교수님이 여기에 오면 아무도 안해본 연구는 할 수 있지만 돈은 못번다...는... 솔직한 얘기를 들었음에도 오히려 그 부분이 멋있?어서 가게 되었다.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인 돈...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뛰게 만드는 것을 끝까지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저자도 그 중에 하나이다. 나는 그럴정도의 깜냥은 되지 않아 힘겹게? 취업했고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ㅋㅋ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그렇다. 그 어떤 선택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선택했다면 후회하지 말고 그 길을 묵묵히 걸으면 된다. 나는 남을 용기가 없어 떠난 것이 아니라 떠날 용기가 있던것이다. 취업해서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할때, 사수는 진지하게 나에게 다른일을 찾아보라고 까지 했지만... 묵묵히 길을 걸었고, 지금은 아무도 전자과 출신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ㅋㅋ 그리고 나 또한 새로운 일을 하면서 가끔... 소녀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저자가 강의한 '우주의 이해'라는 수업. 나 또한 (다른 학교, 다른 교수님이었지만) 비슷한 교양수업으로 들었는데, 강의보다는 자막도 없는 ㅠㅠ BBC 우주관련 다큐멘터리를 틀어줬던 수업이라... 뜻있는 학생들은 영어 리스닝 공부를 하고, 나머지는 취침하는 수업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만약 저자의 수업을 들었다면 나도 좀 의미있는 수업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오... 우리나라의 천문학 역사에 대해 처음? 알게된 부분이 정말 많다. 우리 사료에서 천문 기상 관측사료를 분석해보라는 과제는 정말 신선해서 지금 나도 해보고 싶은 과제이다. ㅋㅋㅋ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 원년인 1392년부터 철종 때인 1863년까지 470여 년간의 긴 시간동안, 국가 주도하에 체계적으로, 왕을 넘어 역사 그 자체에 충성스러운 사관들이 남긴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임금이 '이런 것은 적지 말라'고 하면 적지 말라고 했다는 것까지 기록해버린 이 지독한 공무원들은 하늘과 자연의 현상도 기록으로 남겼다. 사료를 보면 눈이 '몇 촌' 쌓였다거나 '팥알' 혹은 '달걀'만한 우박이 내렸다고 쓰여 있다. ...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도 우리나라 사료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989년 고려 성종 때의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매번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오호.. 이런 기록이 다 사료에 있구나. 하긴 천기누설이란 말처럼... 옛날에는 하늘의 구름이나 별을 보고 천기를 봤으니 그렇구나. 심지어 인터넷으로도 조회가 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아서 들어가서 재미로 보고 있다. ㅎㅎ

<최고의 우주인> 글을 읽으며 나는 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난 페미니스트도 아님에도 정말 아직까지 이런문화라는 것이.. 

갑자기 연구실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더러 유학을 가서 외국에서 사는걸 추천한다고, 당신도 남매를 키우고 있는데 아들은 모르겠고, 딸은 그렇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말이다. 아직 이곳은 여자로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물론 나는 그정도 역량이 없어서 ㅠ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나는 관련 분야에 채용공고가 나올때마다 꾸준히 원서를 넣었다. 4년 차 되던 해, 드디어 정규직 자리의 최종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면접관은 내게 물었다. "여직원들은 육아휴직이니 뭐니 해서 팀원들을 불편하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간절한 구직자의 슬픈 순발력으로, 다른 여성 지원자들보다 우위에 서보겠다고, 이미 아이들이 다 커서 육아휴직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다고 답변했다. 면접관은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로부터 스무날 가까이 지독한 불면과 자기혐오에 시달려야 했다. 면접 결과는 낙방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에휴...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나? 어떻게 들어온 직장이고, 어떻게 공부한 대학(원) 세월인데... 휴직을 하게 되면 뒤쳐질 수 밖에 없어 다시 복직해도 고생문이 훤하다. 휴직기간에는 육아와 살림에 지쳐 자기개발의 꿈?은 며칠 안되어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을 다 아는 경험자들은 후배 휴직자에게 얘기한다. "아이한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예요. 고생해요. ㅠㅠ"

육아 안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래, 뭐, 아직까지는 육아휴직으로 빈 자리를 해결할 솔루션이 없으니 남는 분들의 힘든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이해는 된다. 하지만 진짜 황당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던... 우주인 인터뷰 기자의 질문.

당시 미혼의 박사과정생이던 이소연에게 기자는 '골드미스'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주에서는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는데, 여성이니 피부 문제에 신경쓰이겠다고 했다. 우주에서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하느냐고도 물었다. 우주가 상당히 춥다더라는 기자의 우려 섞인 질문에는 고산의 대답만이 기사에 실렸다.

난 감사하게도 직장을 잘 만나서 15년이 넘게 일하고 있다. 그리고 12년 동안 맞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퇴근 후 육아는 당연히 엄마의 몫이다. 그게 현실이다. 아마도 명분은... 이 땅에서는 남자가 끝까지 일할 수 있으니,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직장에서 버틸 수 있는 개발 시간을 더 줘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설득력? 있는 그 명분에 동의하며 살아가고 있다.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다. 맞벌이 가정이라도 아내가 남편보다 육아와 집안일에 더 많은 시간과 체력과 열정을 소모한다. ... 그리고 아이는 아플 때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부족하므로 양육자 중 누군가는 본인의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럴 때 아빠는 왜 아이를 보러 가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당연해서'일 것이다. ...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그게 가능하니까'다.

저자가 <감정의 진폭>에서 얘기했듯,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감정이 더 넓고 깊어진것을 느낀다. 가장 가까웠던 동생은 내게 늘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감정이 없다나... 그랬던 내가 아이를 낳고서는... 달라졌다. 그제야 제대로 된 사랑을 해서 인것인가 싶기도하고. 엄마에게 아이는 생명 그 자체다. 어릴 적 늘 엄마는 내가 아프면 나를 품고 있었던 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현재 몸소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 한번도 본적 없는 다른 아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일처럼 울게 된다. 이렇게 나도 사람이 되가나 보다. ㅋㅋ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친구들은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무색무미무치무형의 벽을 느꼈다. 엄마 아빠들은 달랐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의 아이가 아픈데 왜 내 가슴이 이토록 타들어가는지를 그들은 잘 알았다. 그건 아마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면서 감정의 진폭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관측하기 딱 좋은날>을 읽으며 천문학자가 정말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읽는 입장으로는... 보현산 천문대에 가서 관측하는 그 여정에 나도 껴보고 싶을 정도로~ ^^

오후 느지막이 올라가서 하늘 플랫을 찍어놓고, 어두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노을을 보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기계처럼 오직 관측에만 집중하는 시간. ... 유독 밤새 빈틈없이 관측한 날은 파킹하는 그 순간이 가슴 끝까지 뿌듯하다. 너무 졸려서 미각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비우고는, 관측자 숙소의 암막 커튼이 주는 그 따뜻한 어둠속에서 죽음처럼 잠들고 싶은, 관측하기 딱 좋은 날.

대학원 시절, 실험 장비가 억대의 고가라서 두 연구실이 공동으로 구해해서 함께 시간을 나눠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석사 나부랭이?인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하루라도 감사하기에 실험하는 날은 무조건 밤을 새어야 했다. 그리고 동트기전 학교 근처의 24시 사우나에 가서 씻고 나와 아침은 식초를 듬뿍 친 물냉면을 먹었다. 내가 밤을 새면 왜 그리 냉면을 먹었나 했는데, 저자의 말처럼 미각이 마비된 상태라 자극적?인 식초향의 물냉면이 딱이었나 싶다. ㅋㅋㅋ 아...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언론은, 어쩌면 사람들은, 대단한 과학자를 집중 조명하고 싶어한다. 고난을 극복한 영웅담에 빨리 감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학자를 여럿 키워서 그중 한 사람이라도 대단해지는 과정을 지지하거나 지켜보는 것은 별로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세계적 과학자가 어디서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날 리 없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나보다. 애니메이션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고난속에서도 티 없이 밝게 살다가.. 알보고니 특별한 아이여서 마법을 하거나 초능력을 가져서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ㅋㅋ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  저자의 얘기처럼 뿅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과학선진국들을 보면 오랜 기간... 수십, 수백년?동안 많은 비용을 국가적으로 투자하면서 과학자들을 키운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나라는 그럴할 여유가 없어서 성과가 바로 보이는 일에 선택과 집중을 했고, 사실 그러한 전략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었던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투자할 여력이 생겼으니 저자와 같은 좋은 씨앗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할것이다.

오우...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역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 그런가, 평범한 일상에서도 심오한 의미를 찾아낸다. <창백한 푸른점>은 아이를 가진 나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어느날, 아이가 유치워에서 노래를 배워왔다. "나는 이다음에 커서 어른 되면 우주 비행사가 될 거 예요. ...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인사 나눌지도 몰라" "그렇게 멀리까지 갈 거야? 그러면 엄마는 속상할 것 같은데." "그냥 노래야. 노래." "엄마랑 같이 그냥 지구에서 살자." "응!"

하지만 언젠가 아이도 내 품을 떠날 것이다. "엄마가 뭘 알아?" 하고 큰소리치면서 제 방문을 쾅 닫아버리겠지. 독립한다고 손바닥만한 집을 얻어 나간 뒤 숙제는커녕 어떤 조언도 구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 그 애가 마지막으로 잠시 나를 돌아본 뒤 자신만의 우주를 향해 날아갈 때, 나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아주리라.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지금은 나에게 껌딱지?처럼 매달리고 안기는 아이로 인해 팔, 다리, 허리 ... 몸 곳곳이 쑤시지만... 그리고 뭘해도 엄마랑 같이 하자고 조르는 바람에 밀린 일로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지만... 선배 엄마들은 늘 얘기한다. 지금 이 순간을 감사히 여기며 즐기라고. 아이는 너무 빨리 자라서 우리의 품을 떠난버린다고 말이다. 그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도록 모든 감각을 열고 아이를 꼬옥 안아줘야지.

어린 왕자를 읽다 저자가 고통?에 빠지는 순간을 보며 ㅋㅋㅋ 빵 터졌다. 그리고 신선했다. 그렇지 천문학자 입장에서는 몰입이 쉽게되지 않을것이다. 일반인이야 뭐. 어린왕자가 왔다는 소행성나오는 부분은 그냥 받아들이며 쓰윽 지나가고 여우와 장미에 대한 어린왕자의 대사에 감동받고 주인공과 어린왕자의 슬픈이별에 눈물을 흘릴수 있겠지만... 

<어린 왕자>를 읽을 때면, 안타깝게도 나는 이 대목에서 집중력을 잃고 만다. ... 문학의 범주에서 직업병의 영역으로 하릴없이 흘러가버리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서다. 그게 잘되는 날은 숨을 크게 몇 번 쉰 다음 책을 마저 읽고, 안 되는 날은 책을 덮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태양과 소행성과 어린 왕자의 개략도다. 천체와 관측자의 크기 및 거리는 실제 비례와 다름에 유의.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 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 거대한 태양의 아래쪽 끝이 지평선에 닿을 때부터 위쪽 끝마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열여섯 시간. ...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

와우. 어린왕자 책읽다가 행성에 대한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 덕분에 나는 수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어 만약 우리가 하루가 88일인 곳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ㅋㅋㅋ

<스타 트랙> 시리즈에서는 우주 곳곳의 문명이 서로 교류하며 행성 연방을 구성하는데, 연방의 규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외계 문명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프라임 디렉티브' 규칙에 완전히 동의한다. ... 행성 보호국에 취직한다면 화성이나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혹은 타이탄에 보낼 탐사선 부서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런곳들은 생명이 싹트기 좋은 환경이라서 행성보호국의 업무 강도가 세다. ... 반면 달이나 수성, 소행성처럼 물이나 유기물질이 있다고 해도 생명이 번식할 가능성이 낮은 천체를 다루는 부서라면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될 것이며 정신적 스트레스도 덜할 것이다.

오호. 유용한 팁~! ㅋㅋㅋ 나는 행성보호국에 취직할 일이 없겠지만 혹시 아나... 우리 아이는 가능할 수도 ^^ 아이에게 미리 귀뜸해야지 ~

저자가 아무리 자신은 평범한 사람인데 그냥 열심히 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왔다고 해도. 글을 읽는 내내 역시 보통사람이 아니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고등학생때 연주시차를 그린 선생님을 보며 지구과학 경시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다거나... 야자시간전 뜬금없이 로랜드고릴라를 보러 서울대공원에 간다는것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ㅋㅋㅋ 

나는 고등학생 때 종종 이 로랜드고릴라를 보러 갔다. 학교에서 서울대공원까지는 지척이었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너나없이 밤 열시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던 시절이었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조용한 둘레길을 살살 걸어가면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동물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갈 곳이 있어도 갈 곳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던 고등학생처럼, 폭주하는 고릴라 역시 거기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고등학교 시절 아무생각없이... 내 사랑 강냉이를 먹으며 TV 무협드라마에 심취해서 집에서 나가질 않았는데. 집나가면 고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역시... 저자는 학창시절부터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었구나...

명황성이 행성에서 퇴출?되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살아가는데 지장 없는 소식이다 보니 아마 기사에서 봤어도 기억을 못했을것이다.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키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 카론 역시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 받으며 아무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명왕성이나 카론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지구인들이 뭐라고 부르던 무슨 상관인가. 우주의 질서대로 열심히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는 그들의 존재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일텐데. 이 글은 나에게 참 와닿았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뭐라고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의 뜻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기에도 바쁜 인생이다.

저자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처음 별자리책을 사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맞춰봤다고 했다. 하긴 나 또한 공대에 들어갔지만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고 ^^;; 대학에 가서야 입학선물로 아버지께서 사주셨다. 그랬던 저자는 지금 천문학자로 살고 있고,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살고 있다. 한때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손석희씨가 늦은 유학생활중 썼다던 글이 갑자기 생각나 찾아봤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저 글을 처음 봤을 때, 난 당연히 손석희씨 정도면 똑똑해서 한번에 대학도 붙고 또 큰 어려움없이 빠르게 승진하고 장학금으로 유학을 갔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대학이나 사회진출이 늦은 편이었고 자비로 가족까지 데리고 마흔을 넘어 유학길에 올랐다는 사실에 적쟎이 놀랬고, 그리고 더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타고난 천재들의 화려한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평범하지만 묵묵히 속도가 늦더라도 자기 길을 걸어가서 자신의 분야에서 존재감을 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다.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열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열번의 계절... 정말 신선한 표현이었다. 순간 나는 이게 몇년 몇개월이지 계산하고 있었다. 계절 단위로 시간을 계산해 본적이 없었다. 나의 지루하게 굳어버린 사고방식에 놀라며... 

요즘 서점에 가면 책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색다른 제목들이나, 핫한 키워드들을 조합한 제목들의 책이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책을 고르기가 힘들어... 아니 싫어졌다. 원래 난 좋아하는 책 장르가 소설보다 현실성 있어 와닿는 에세이인데, 너도 나도 책을 쓰는 세상이라 너무 식상하고 가벼운 에세이들을 많이 보게 되어서 지쳐 있었다. 비슷한 얘기들... 

오~! 그렇지만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책 뒷표지의 추천글을 쓴 편집위원의 얘기에 급 공감한다. 

일기 쓰는 천문학자의 시야 넓고 보폭 정확한 글을 읽으며 확신이 들었다. 일이 세상을 만든다면 우리에겐 직업에 관한 더 많은 글이 필요하다.

신선한 에세이를 읽고 싶은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________^